Header
2024년 11월 이 달의 책과 커피,
UNFORGETTABLE TASTE
잊지 못할 커피 경험


해가 갈수록 짧아져 더욱 귀하고 애틋한 가을입니다. 가을을 많이 누리고 계신지요? 올가을, 우리 한국인들에겐 아주 경사스런 일이 있었습니다.
한강 작가님의 노벨문학상 수상!
‘아시아 여성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더라도 충분히 영광스러운 일이라 우리 모두 수상의 기쁨에 들떴던 것 같습니다. 한강 작가님의 책을 구입하기 위해 서점에 오픈런이 벌어지는 등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을 목도하기도 했고, 그 열기에 힘입어 단시간에 100만 부가 넘는 책이 팔렸다는 소식도 들었는데, 책방을 하는 저로서는 모두 반갑고 기쁜 일이었습니다.




네, 저는 매달 네스프레소 고객 여러분께 이달의 커피와 책을 추천하는 최인아책방 대표 최인아입니다. 책과 커피의 페어링인데요, 이달에도 함께하면 좋을 커피와 책을 골라 추천드립니다. 이달의 커피부터 말씀드리면 ‘리스트레토 클라시코’입니다.
리스트레토는 에스프레소보다 적은 물의 양으로 짧은 시간 추출하여 용량도 적고(25ml) 보다 농도 짙은 커피입니다. 하지만 쓰지 않을까 하는 염려는 안 하셔도 됩니다. 오히려 커피 아로마는 풍성하게 뽑아내면서 자칫 너무 오래 추출할 때 나오는 쓴 맛은 최소화 하기 때문에 보다 부드럽고 달콤하게 즐기기 좋은 커피입니다. 날로 깊어가는 가을에 즐기기 좋은 커피예요.
그렇다면 이 커피엔 특히 어떤 책이 어울릴까요?
한강 작가님의 소설 『희랍어 시간』을 추천드립니다.
네스프레소 버츄오 리스트레토 클라시코
한강의 『희랍어 시간』


짐작하셨을 것 같은데, 이달엔 그 어떤 책보다도 한강 작가님의 작품을 추천하고 싶었습니다. 왜 안 그렇겠어요? 노벨상 수상 작가인데요! 당대에 이런 기쁜 소식을 듣다니요. 또 노벨상 수상작을 우리말 원어로 읽다니요!
저는 한강 작가님의 여러 소설 중 『희랍어 시간』을 골랐는데요, 스웨덴 한림원은 올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한강 작가님을 발표하면서 선정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역사적 상처에 직면하고 인간 삶의 취약성을 노출시키는 시적 산문”이라고.
한강 작가님의 대표작으로는 『채식주의자』나 『소년이 온다』가 많이 거론됩니다. 특히 『채식주의자』는 2016년 맨부커상 인터내셔날 부문 수상작이니 더욱 그럴 만 하죠. 그런데 네스프레소 이달의 커피는 아주 응축된 방식으로 추출하는 ‘리스트레토’ 잖아요? 저는 ‘응축된 방식’이라는 특성에서 시를 떠올렸고 한강 작가님의 소설 중 가장 시적인 작품이 무얼까 찾은 끝에 『희랍어 시간』을 골랐습니다.
여러 예술 장르 중 시(詩)야말로 응축의 대표 장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다 풀어놓지 않고 거르고 거른 끝에, 또한 생략과 승화를 거듭한 끝에, 즉 최대한 응축시킨 끝에 비로소 도달하는 사유와 표현의 에센스…
저는 시야말로 이렇다고 생각하는데 『희랍어 시간』이 바로 그런 소설이라고 느꼈습니다.


『희랍어 시간』은 『소년이 온다』나 『작별하지 않는다』처럼 역사적 사건에서 출발한 소설이 아니고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입니다. 사건을 통하지 않고 직접 개인의 내면으로 들어가 길어낸 이야기인 만큼 어쩌면 보편적인 이야기라고 해도 무방하겠습니다. 어떤 사건으로 인해 말을 잃은 여자와 시력을 상실해가는 남자의 이야기…
앞을 보지 못하는 분들은 다른 감각이 예민해진다고 하죠? 유명한 하피스트 중에 시각 장애인이 있습니다. 그 분은 앞을 보지 못하는 대신 하프를 연주할 때 느껴지는 바닥의 미세한 진동을 감지해 연주한다고 해요.
그런가 하면 배우와 공연 기획자로, 또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총감독으로 종횡무진 활약해온 송승환님이 몇 년 전부터 망막색소변병증을 앓고 있다고 해요. 형체만 보일 뿐 앞을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시력을 거의 잃었답니다. 그런데도 그는 ‘봄밤’같은 드라마나 ‘더 드레서’ 등의 연극 무대에 꾸준히 서고 있습니다.
앞이 거의 안 보이는데 대사는 어떻게 외우고 카메라 앞에서 연기는 어떻게 했을까요? 어떤 자리에서 그 분과 만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러더군요.
앞이 보이지 않으니 다른 감각이 열려서 함께하는 배우의 미세한 움직임 하나하나가 감지되더라고.


『희랍어 시간』의 묘사가 바로 그랬습니다.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의 예민한 감각을 글로 전하려니 그 묘사가 얼마나 섬세하겠어요? 또 시원하게 말하는 대신 침묵으로 침잠하는 여자에게 일어나는 작은 느낌들을 놓치지 않고 글로 전하려니 문장이 얼마나 세심하겠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글이 장황하거나 늘어지지 않아요. (당연하지요. 한강 작가님의 글인데!)
오히려 너무 많이 묘사하지 않아서, 즉 말하지 않음으로써 많이 말합니다. 저는 지난 6월, 클레어 키건의 소설 『맡겨진 소녀』를 추천하면서 비슷한 느낌을 적었는데 한강 작가님의 소설에 함께 소개되는 문구 즉 ‘시적인 산문’이 이런 의미가 아닐까 헤아려 봅니다.
사실 줄거리는 말할 게 많지 않습니다. 여자와 남자 모두 모종의 사건 (역시 분명하게 드러내 말하지 않죠) 을 겪으면서 말과 시력을 상실하는 대신 침묵과 빛을 만나게 되는 이야기랄까… 너무 안타까워서 천천히 읽을 수 밖에 없는 소설이었는데 소설을 읽는 동안 몇 가지 생각과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작가는 왜 이런 이야기를 썼을까? 남자는 독일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와 희랍어를 가르치고, 여자는 말을 잃어가는 중에 뜻밖에도 희랍어를 새로 배우는데 말을 잃어가는 이가 어째서 말을 새로 배우며, 수많은 언어 중에 하필 희랍어일까…?


저도 SNS를 합니다만, 피드를 들여다 보고 있자면 말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대한민국엔 표현의 자유가 있어서 누구라도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지만읽고 있자면 ‘조용히 있지. 그냥 지나가도 될텐데’ 싶은 피드도 적지 않습니다. 말이 너무 많은 거예요.
어디 말 뿐인가요? 길 거리의 전광판을 비롯해 하루 종일 잠들지 않는 각종 모니터들…24시간 내내 화려한 빛을 쏘며 볼 것을 강요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데 작가에게도 언어가, 또한 세상이, 그렇게 느껴진 순간이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런 시끄러운 것들을 물리고자 여러 언어 중에서도 이미 저물어버린 희랍어를 배우고 가르치는 게 아닐까, 시력을 잃는 대신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게 한 게 아니었을까 짐작해 봅니다.


또한, ‘요약본’을 읽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을 새로 했습니다. 늘 바쁜 우리들은 종종 요약본을 찾습니다. 그런데 만약 한강 작가님의 이 책을 요약본으로 읽는다고 칩시다.
한 여자와 한 남자가 있었는데 그들은 말과 시력을 잃어 간다..
이렇게 요약될 겁니다. 과연 읽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어떤 책은 내용 그 자체보다 작가가 쓰려고 한 것들의 기미와 미세한 흔적을 더듬는 일이어야 합니다. 마치 미세한 진동을 통해 소리를 가늠하는 것처럼요. 『희랍어 시간』이야말로 그런 책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이 책은 마치 점자 책을 읽듯 단어 하나 하나를 손으로 더듬어 가며 최대한 천천히 읽으시라 말씀드립니다.
노벨상 수상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려니 부족한 소개가 될까 걱정이 큽니다. 부디 한 분이라도 더 이 책에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늦가을에 음미하듯 읽기 좋은 소설이니 이달의 커피, 리스트레토 클라시코를 드시면서 함께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다음 달에도 좋은 커피, 좋은 책과 함께 돌아오겠습니다.


네스프레소 이달의 커피,
버츄오 리스트레토 클라시코


에스프레소보다 더 응축된 추출 방식으로 용량도 적고 (25ml) 추출 시간도 2-30% 짧게 해서 만드는 커피입니다. 그렇다고 쓴 맛이 강한 커피는 아닙니다. 오히려 커피 아로마는 풍성하게 뽑아내면서도 자칫 오래 추출할 때 나오기 쉬운 쓴 맛은 최소화 해서 보다 부드럽게 즐기기 좋은 에스프레소로 만들었습니다.
균형 잡힌 산미를 좋아하는 분들께 특히 사랑받는 커피로 신맛 먼저, 그 다음에 단맛과 쓴맛 순으로 추출합니다. 커피의 여러 개성이 고루 어우러지는 커피인 만큼 천천히 음미하시면서 리스트레토의 다양한 테이스트와 향을 모두 느껴 보세요~

